컴퓨터 운영 플랫폼

사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정거장만 플랫폼은 아니다. IT쪽에서 플랫폼은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쓰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 정도를 지칭한다. 적절한 예가 응용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운영체제인 MS사의 윈도우 시리즈가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리눅스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도 있다. MS는 운영제체라는 플랫폼 시장을 윈도우로 장악하여 성장하고 IT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만큼이나 기반, 운영체제,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IT에서 중요하다.

음악 플랫폼

전통적인 음반회사들은 불법 MP3 다운로드라는 지하 경제를 파괴하기 위해 네티즌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저작권법에 호소해왔다. 반면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애플사는 그 사이 무엇을 했던가? 애플은 아이튠즈라는 온라인 상의 음악 유통 플랫폼과 아이팟이라는 멀티미디어 재생 플랫폼을 결합하여 대세를 장악했다.



심플하고 패셔너블한 애플사의 신제품들은 미국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올해 아이튠즈에서 소비되는 음악은 윌마트에서 판매되는 음반판매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마도 이제 음반사들은 애플사가 만들어놓은 아이팟과 아이튠즈라는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까지도 나오고 있다. 음반회사들은 진행중인 변화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고, 오직 눈에 보이는 적하고만 싸웠다.

익스플로어와 파이어폭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네스케이프를 단기간에 몰락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윈도우라는 OS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걸 기반으로 익스플로어를 끼워팔았기 때문이다. 하지면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다. 파이어폭스는 세계 시장에서 20% 점유율을 이미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구글도 브라우져 시장에 크롬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파이어복스의 영향력이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플랫폼이 윈도우라는 OS가 아니라 웹 자체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웹2.0은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좀더 기술적으로는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의미한다. 웹 자체가 곧 플랫폼이 되면서 윈도우라는 OS 플랫폼은 그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다. 최근 IT전문가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맥북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서도 점점 이용자층을 확대해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플랫폼으로서의 웹"이라는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플랫폼은 중요하다. 운동에서도.

인터넷 이야기를 하려고 애플사와 인터넷 브라우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에피소드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풀뿌리는 기만이다에 대한 반박글"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풀뿌리가 기만이건 말건 간에 이재영씨도 결국은 진보하자는거다. 근데.... 우리 함께 진보하기 위해서는 진부한 것들을 걷어버려야 하는데 왜 이리도 진보가 진부한지 모르겠다.

숲이 먼저 봐야 한다. 나무를 먼저 봐야 한다. 길을 우선 찾아보자. 길을 새로 만들자..... 서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평등이 먼저네, 자주가 먼저네, 성장이 먼저네, 복지가 먼저네라고 주장해왔던 진부한 논쟁과 다름 아니다. 먼저가 어디 있나 함께 움직이는거지.

풀뿌리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력감시운동이나 중앙정치운동에 대해 부정하지 않아왔다. 다만, 그 운동과 풀뿌리운동이 함께 가야만 세상이 진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을 뿐이다. 누가 풀뿌리운동이 지금 운동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이야기했는가? 그동안 소홀히해왔던 일상의 정치, 삶의 정치, 지역의 정치, 공동체의 정치가 활성화될 때야만 세상이 진짜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해왔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고, 개혁세력이 권력을 잡고, 386정치세력이 중앙정치권의 전면에 부각하는 그런 거짓 변화 말고 진짜 변화를 원하려면 풀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제발 풀뿌리와 지역운동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역이 곧 국가이고, 국가가 곧 지역이다.

우리 소통의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수년간 시민사회 내에서 소통이 화두였다. 모두가 소통을 이야기하다. 위기의 원인도 소통의 실패였고, 위기의 극복도 소통의 회복이었다. 정작 소통하자고 했으나 소통하지 아니하였고, 가장 중요한 소통의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었다. 소통의 플랫폼은 진화해가고 있는데 여전히 운동 진영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플랫폼은 전통 미디어와 아래아한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고라 Agora가 왜 뜨는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 있었던 열린 회의의 장소, 아고라.... 그 온라인판이 Daum의 아고라다. 특별하지도 않은 그 게시판이라는 공간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그곳에 가면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소통의 플랫폼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소통의 플랫폼들로 들어갈 때 소통이 시작된다. 웹이라는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소통의 플랫폼들이 존재한다.

변화가 있다면 점점 웹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운동 진영에서 모바일 공간에서의 소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 앉아서 소통하는 시대에서 이동하면서 소통하는 시대가 온다. 이건 큰 차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소통의 플랫폼을 고민하지 않으면 시민운동의 소통의 화두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 뿐 영영 물건너가게 된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만족할만 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의 입발린 소리일 뿐이다. 형식은 갖추어져 있는데 내용이 부족하다고? 그렇지 않다. 그들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정치학 개론 교과서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형식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완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그것이 형식이건 내용이건.

http://www.flickr.com/photos/nathanwells/2829094317/


우리가 지금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시스템, 즉 어떤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그 안에 담는 사람과 내용만 고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 플랫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국가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꽃피는 플랫폼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정치학 교과서나 민주주의 교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법으로도 규정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플랫폼이 법조문 안에 담겨질리 만무하다.

진보세력이 이명박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집중하면 5년 후에 또다른 정권을 비판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더 얄밉고 더 특권적이고 더 염치가 없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이고, 일부 진보들도 마찬가지이다. 비판에 집중하면 결국은 비판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이 보수 권력에 비판적인 세력, 좀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정책 정도만을 제시해주는 세력으로 남을 요량이라면 지금과 같이 나아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이라면 10년, 20년 후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플랫폼을 가지고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하나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같이 가야 하는데 하나에 집중하게 되면 하나는 느려지기 마련이다. 변화하지 않는다. 그 일이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 지금 운동의 문제 중 하나이다.)

http://www.flickr.com/photos/dr/2048034334/



닫힌 지식은 필요없고 열린 지식이 필요하다.
고립된 전문가 보다 네트워킹된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이다.
소통하자는 이야기를 넘어 소통의 플랫폼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 2008년 5월에 [풀뿌리는 기만이다]라는 글을 보고 썼던 글인데 비공개 상태로 놔두었다. 최근에 플랫폼에 대한 생각이 들어 추가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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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시스 2008/12/17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으니 바캠프에서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사실은 그 대화들이 제가 보낼 앞으로 몇년간의 꺼리를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ㅋ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상세보기
하승우 지음 | 그린비 펴냄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여섯번째 권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바로 이처럼 해방 전후로 산산조각 난 한국 아나키즘운동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복원해주는 책이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을 읽다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곱씹어야봐야 할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 더 나아가 타락한 정치야말로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불평등과 폭력이라는 오랜 부조리를 낳은 것은 바로 정치라는 제도 자체라는 것이었다....

정치라는 것을 막스 베버가 말한대로 '국가의 운영 혹은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정치 제도는 '국가에 의한 국민의 지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종의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과 타락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삶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와 그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 관료,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권력 집단들에 의해서 조장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판단일 수도 있다.

...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식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인민들을 배제한 혁명은 그 후에도 여전히 인민들을 배제하리라는 것이다. 기성의 권위를 또 다른 권위에 빗대어 부정하지 말 것, 정치권력을 형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 대중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들 것, 간단히 말해서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 이것이 바로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었다.

87년 이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민주화세력, 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믿을 만한 세력으로 부상했던 시민사회세력들이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고, 진보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적절치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내용'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내용이 좋다면, 내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콘텐츠가 진보적이라면 다른 모든 것은 용서가 될 수 있다는 순진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한 국민들은 내용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까지도 꼼꼼히 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크로포트킨이 주장한 상호부조는 단순히 사랑이나 동정심 같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성이라는 연대의식을 뜻한다. 이 연대의식은 "상호부조를 실천하면서 각 개인이 빌린 힘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각자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각 인간마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해주는 의식, 즉 정의감이나 평등의식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의 원리로 개인의 삶을 옥죄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원리로 상호부조의 정형화된 틀을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봤다.

개인의 삶을 옥죄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원리로 상호부조의 정형화된 틀을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진보라는 크로포트킨의 말은 한편으로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변화의 지점 - 그 변화를 웹의 출현이 가속화시켰다 - 과 개방과 공유, 참여라는 웹2.0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곰곰히 생각해볼 말이다. 단체의 이름, 전문가라는 허상 속에 묻혀져 있었던 수많은 운동가들 개개인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 변화의 주체가 되지 않는 이상 진보적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는게 경험적인 판단이다.

... 모든 새로운 발명은 기계학과 공업이라는 폭넓은 분야에서 그것에 앞서 행해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명들의 종합이며 그 결과이다. 과학과 공업, 지식과 응용, 발견과 새로운 발견으로 이끄는 실제적 응용, 사고와 두뇌 노동과 손의 재주, 두뇌와 근육의 노동,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협력한다. 발견의 하나하나, 진보의 하나하나, 인류 재산의 하나하나의 증가는 과거와 현재의 육체적, 정신적 노력에 힘입고 있다.

금요일에 Creative Commons Korea 주최로 열린 CC컨퍼런스 현장에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지식과 정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독점적 소유를 통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오만함의 극치가 아니던가? 한 세대의 인간이 아닌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인류의 공동의 자산인 토지를 개인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산업화시대의 문제들이 발생하였듯이 디지털 시대에 지식과 정보의 독점 문제, 재산권 행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지금은 예상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 틀림 없다.

...혁명이란 단순히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의 체계 전체를 바꾸는 사회혁명이어야 한다.

시민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 때 우리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해왔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프레포지에는 생명의 보호와 반(反)권력이 유사하다는 점,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을 해체시켜 지역으로 환원시키려 한다는 점, 기성 정치제도나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직접 행동을 선호한다는 점,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하고 전문가주의를 거부한다는 점 등에서 생태주의와 아나키즘이 공통점을 가진다고 본다.

... 말이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항상 말해도 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면 말해선 안된다. 말이 행위를 변화시킬 수 없는데도 자꾸 말을 한다면 쓸데없는 말에 불과하다.

말로 논평하고 주장했던 것이 지난 10년의 시민운동이라고 하면 지금은 '다시' 말로서는 세상이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시민운동의 말의 잔치'가 더 이상 잔치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데 '말'에 더이상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매력이 없어졌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말이 대중들에게 전달될 통로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두번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일은 말이 전달될 통로를 개척해야 하고, 동시에 그 말에 매력적인 요소 - 그것은 말 자체의 매력 뿐만 아니라 말과 실천이 결합했을 때 느껴지는 말의 진정성과 매력 - 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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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리눅스형 리더십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노무현 당선자를 두고 이렇게 표현한단다.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 조금씩 발전시키고 함께 이뤄나가는 리더십"이 바로 리눅스 리더십이란다. 위 문장에서 '리더십'이라는 말만 '시민운동'으로 바꿔보자.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참여해 발전시키고 함께 이뤄나가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위키백과사전

단체의 창립 초기에 리눅스형 운동과 MS형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걸 다 만들어놓고 '자 이런 운동 만들어놨으니까 너그들은 여기 참여해봐라'라고 주장하는 MS형 운동방식과 아이디어를 던져놓고 '이런 운동을 할려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진행하면 좋을까요"라고 제안해나가는 리눅스형 운동 말이다.

수평적 네트워크와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시민운동은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위에서 말한 리눅스형 운동을 말한다. 리눅스 정신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개방성, 그리고 공동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공동으로 이용한다는 공유의 정신에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시민운동은 이러한 정신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운동의 정신이자 원칙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온 인터넷의 힘, 네티즌의 힘, 가상공간의 역동성은 우리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생각을 디지털 기호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은 공상에 불과하다. 공상도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는 디지털 기호로 -- 그것이 텍스트든, 영상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 표시될 때만 공상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시민들을 강당에 앉혀놓고, 거리에 불러놓고 마이크잡고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났다.

마이크줄을 타고 앰프로 전달되는 아날로그 소리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흘러다니지 않는다. 토론회, 강연회, 집회와 시위 때 한 이야기를 디지털 기호로 전환시켜서 유통시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디지털 네트워크에서는 그것은 '하지 않음'으로 기록된다. 다시금 디지털 네트워크에 맞는 운동방식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체크해보는 기회를 갖자. 그동안 우리의 행적을 드러내면서.

<시민운동, 인터넷에서 살아남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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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리처드 스톨만 사인회 다녀왔습니다.

    Tracked from 랜덤여신의 폐인모드 2008/01/19 22:57  삭제

    Emacs에게 축복을, Vi에게 저주를!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트롤(게시판에서 난상 토론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어제, 스톨만이 연세대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높으신 분을 직접 뵙기 위해 저도 가 보았답니다.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과 리눅스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GNU를 만들고, GNU 도구를 만들고, GPL도 만들고... 한 일이 많아요. 그러나 그의 성격은, 좋게 말하면 직...

  2. Subject : RSS 사용료 논란, '원소스 멀티유스'의 관점에서 접근하자

    Tracked from '뉴스로그-시즌2' 팀 블로그 2008/01/20 01:21  삭제

    개인적인 일로 며칠 지방에 다녀온 사이, 언론사의 RSS FEED 이용 문제를 두고 블로고스피어에서 한차례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최초의 관련 포스팅 "RSS에 사용료를 요구하는 인터넷한겨레") 몇 시간에 걸쳐 열심히 링크를 좇다보니, 많은 블로거가 정말 칼같은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결방안 또한 자연스럽게 도출되면서 이제는 모종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런 게 블로고스피어의 힘이고 집단지성으로 대표되는 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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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랜덤여신 2008/01/19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리눅스와 오픈소스의 지도자인 리처드 스톨만의 행적을 보면 좌익적인 측면이 있지요.

    관련 트랙백 남깁니다.

    • BlogIcon 아신 2008/01/19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 사실 모든은 아니지만요 - 기술에는 거기에 맞는 철학이 따라다니죠.. ^^ 리눅스... 자유소프트웨어.. 매력적입니다.

  2. BlogIcon A2 2008/01/19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눅스형 시민운동 재밌게 읽었습니다. ^^

전통적인 여론형성 방식, 언론을 통해 국민의 여론을 움직이고, 단체의 지향을 실현시키려는 방법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2002년은 전통적인 여론형성 방식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해가고 있다는 흐름을 일깨워주는 한해였다. 최세진씨가 지적했던 것처럼 2002년 사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이슈들은 대부분 인터넷상에서 여론화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을 직접 상대한다고 했지만 사실상의 홍보와 선전은 對언론에 치우쳐 있었다. 언론이 여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던 시대는 갔다. 언론의 여론형성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기능은 약화되었고, 여론을 반영하는 기사, 특히 온라인 여론을 따라가는 기사들의 비중이 많아지고 있다. 2002년 대선을 조중동 對 인터넷의 대결이라고 할 정도로 인터넷 여론의 힘은 커졌다.

초창기에 인터넷에 열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 미디어적 속성 때문이었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업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현실적으로 오마이뉴스는 장미빛 전망을 현실화시켜준 적절한 예이다. 오연호 대표이사는 대선이 끝난 시점에 "언론권력 교체되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 아니 그 이전에 기자가 누구이고 기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공식부터 파괴했다. 그들은 독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뉴스 생산자가 되었다."

정보의 생산은 독점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이러한 인터넷의 기본명제를 잊고 있다. 100% 그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민단체는 정보의 생산자였고, 인터넷은 유통업자였고, 회원과 네티즌은 소비자였다. 21세기는 정보에 의해 모든게 좌우된다고 했거늘 시민단체들은 분에 넘치게 나만이 정보 생산자임을 자처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작고, 질은 네티즌의 눈높이에 맞추질 못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보 생산자의 역할을 회원에게, 네티즌들에게 넘겨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홈페이지의 탑공간을 네티즌들에게 넘겨주기에는 그들의 정보에 대한 신뢰가 너무 약하고, 과연 그렇게 우리 집 공간을 내주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3년 전, 위험하게 똑똑한 조갑제를 상식을 갖춘 수많은 네티즌이 이겼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이런 흐름은 큰 강물이 되어 대세를 이루고 있다. 3년전 산속 계곡에서 물줄기를 따라 서서히 내려오고 있던 시미단체들을 누군가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까지 데려다놓아 버린 것이다. 미쳐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바로 네티즌들이. 그래서 허망하다고 해야 하나. 다시 계곡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바다에 빠져죽을 수도 없고, 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 연재를 시작하며 : http://actionbasecamp.net/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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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컨텐츠로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함이란 무엇일까? 그건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조직내부의 정직함과 시민운동가들의 정직함. 조직내부의 정직함을 보여주는 것들은 의사결정, 재정, 제반 정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가 월요일 아침마다 모여서 사무국 회의때 한 이야기들, 운영위원회 회의때 나온 이야기들, 우리가 그때그때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아이디어들을 있는 그대로 써서 공개하면 안될까?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정보에 마음을 열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운동가들의 정직함을 보여주는 컨텐츠는 어떤 것일까? 그건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로 표현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는 웹칼럼니스트 이성진씨가 썼던 말인데 "컨텐츠를 생산하는 제작자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추출 가능한 컨텐츠"를 말한다) 이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를 이야기하면서 이성진씨는 두가지 예를 들었다.

하나는 정치인 홈페이지를 컨설팅해주면서 제안한 것인데 정치인 홈페이지의 컨텐츠라는게 정책자료나 보도자료, 동정 외에는 별반 다를 게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컨텐츠를 만들 시간이나 열의가 부족하고 이를 위한 전문인력 비용도 부담되기 때문에 정치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거기서 컨텐츠를 추출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오게 된게 '모 의원의 독서 메모'라는 메뉴다. 이 코너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채워진다. 간단하지만 꾸준히 기록하게 했는데 다른 컨텐츠에 비해 훨씬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코피티션 120쪽에서 128쪽까지 읽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최근의 경제현상을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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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nowcat.co.kr/

다음으로 예를 든 것이 스노우캣이라는 사이트이다. 필름 2.0에 카툰을 연재하는 카투니스트의 개인 홈페이지인데 그림일기와 사진게시판 등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컨텐츠를 올려놓았음에도 스노우캣 홈페이지는 랭킹닷컴의 순위 42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를 이성진씨는 독자들을 위한 기획적 측면과 라이프스타일이 잘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노우캣,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사이트가 되어버렸지만)

현재 단체의 홈페이지의 [커뮤니티게시판]과 [나의게시판]은 일종의 이런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컨텐츠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인기있다고 하는 [좋은엄마, 나쁜엄마], [아이를 키우며], [농주의 귀농생활]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게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라이프스타일 컨텐츠를 상근자들 개개인이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시민운동가로서의 정직함과 진솔함, 고민들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칼럼식의 글보다 일기식의 글, 한달에 한두 개 올리는 것보다 매일매일 짤막하게 올리는 글들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위 커뮤니티는 현재 에피소드라는 사이트로 발전하여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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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수없이 해왔다. 수평적 네트워크, 자발성에 기초한 운동, 눈높이 운동 등등. 하지만 이야기하고나면 그만이다. 실행해보지 못했다. 훈련이 덜 되었던 탓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의 방식이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습성이 찌들어있었던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성명서 하나 작성하고 현안대응했다고 착각한다.
 보도자료를 언론사 팩스로 보내놓고, 당연히 보도되기를 기다린다.
 의견서를 내면 그게 굉장히 중요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한다.
 뉴스레터 발송하는 것으로 우리가 알릴 건 다 알렸다고 생각한다.
 메일발송 프로그램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항의메일을 보내주기를 기다린다.
 배너달기가 굉장히 의미있는 홍보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홈페이지 기사 조회수가 그 기사를 모두 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퍼포먼스하고 그게 신문사진에 나면 즐거워한다. 무엇이 바뀌었지?

사람들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우리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저 수준에서 머무르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 해도 우리의 홈페이지를 생동감넘치고, 재기발랄하고, 사람들로 북적북적대는 곳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콘텐츠를 이야기하기 전에 마인드부터

홈페이지에 담아낼 수 있는 컨텐츠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시민운동을 하는 우리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홈페이지를 개편할때쯤 되면 같이 일하는 상근자들이 요구한다. “성명서 올리면 메인에 바로바로 자동으로 올라가도록 해줘”라거나 “html 코드를 모르더라도 수정할 수 있게 해줘” 혹은 “우리 부서 게시판이나 자료실은 이러저러하게 만들어줘”.... 라고.

우리의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자. “그건 당신한테 편하고 좋은 홈페이지고, 우리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건 뭐지?”아.. “네가 정말 원하는게 뭐야?” 흔히 컨텐츠가 좋고 풍부한 홈페이지에는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런치만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훌륭한 컨텐츠로 무장한 곳이라도 파리만 날리는 곳이 있고, 게시판 하나 달랑 있는 허접한 사이트라도 북적북적대는 곳이 있다. 시민단체의 컨텐츠라는게 사람들이 연예오락 뉴스처럼 안보면 다른 사람과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내용들이 아니다. 숙제하러 오는 중학생이나 레포트 내러오는 대학생들, 다른 단체의 시민운동가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시민단체 컨텐츠를 기다리고 찾아보고 싶고 읽어보고 싶겠는가?

첫 번째 고려해야 할 점은 현재 수준에서 우리가 생산해내는 컨텐츠의 내용은 재미없다는 사실이다. 재미없다는 현실로부터 출발해보자. 재미있다는 표현을 매력적이다라는 표현으로 좀더 발전시켜보자. 그렇다면 매력적인 켄텐츠를 우리가 자체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은 과연 있는가? 매력적인 컨텐츠를 얻기는 쉽지 않다. 매력적인 컨텐츠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비용(시간+인력+아이디어)이 든다.

상업적 사이트를 제외한 성공한 비영리 사이트(정치인, 비영리단체)에서 보여지는 컨텐츠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정직함이다. 비영리단체의 경우 정직함으로 성공한 예를 아직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성공한 정치인 사이트를 두곳만 예를 들어보면 미국의 제시 벤추라와 한국의 노무현.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정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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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en.wikipedia.org/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인 제시 벤추라는 주지사 선거에서 '정직'을 모토로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단돈 600달러로 구축한 웹사이트를 통해 티셔츠를 팔고 선거자금을 모았다. 노무현도 정치자금 안받겠다고 하고 100만명에게 100억원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노무현의 정직 모토는 정치자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한 켄텐츠로 올려놓고, 일일브리핑이나 동영상 인사말을 통해 조중동으로부터 얻어맞은 것을 네티즌들에게 하소연하고 오해있는 점들은 양해를 구함으로써 솔직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성공한 정치인들의 인터넷 전략은 네티즌들에게 논리와 명분으로 설득하기 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언어와 컨텐츠로 네티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정치인들의 웹사이트는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 구축이라는 명제를 수행하기 위해 '정직함'이라는 요소와 '그 정직함의 일관성'이라는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이성진 칼럼 - 시작되는 온라인 정치캠페인) 우리 조직에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정직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좀더 진보된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기 전에 일단은 홈페이지의 각종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스크린하고 이에 대한 답변들을 성실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50%는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재치있는 답변과 성실함으로 회사 이미지를 제고하고 수백억원의 홍보효과를 본 시스코라는 바퀴벌레 잡는 회사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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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서의 재치있는 답변으로 재미있고 친절한 회사이미지를 구축한 세스코


최근엔 답변 보다는 댓글 기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댓글,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나보다.) 댓글은 일종의 코멘트로서 100자논평쓰기, 토막의견쓰기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답변과 달리 이 댓글은 해당 글 아래 바로 붙는다. 컨텐츠의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 댓글은 편리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남이 올린 글을 보면서 '한마디' 툭 던지고 가는 사람, 그 사람의 멘트에 또 한마디 툭 던지는 사람, 일종의 화장실 낙서문화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화장실 낙서문화의 인터넷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댓글이 사실상 본문보다 더 재미있고,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군에 가는데 총을 사가지고 가야 하나요?"라는 글이나 '조리퐁 한봉지에 들어있는 조리퐁을 세어봤더니 몇 개더라'라는 게시물을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준다. 댓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컨텐츠가 되었다.

이 댓글기능보다 좀더 진보한 것이 위키위키라는 개념일 것이다. 여기엔 어느 것이 원 게시물이고 수정본인지, 답변들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한 사람이 게시물에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은 [Edit Text] 버튼을 눌러서 전체를 수정해 버릴  수 있다.

완벽한 공동작업인데 이 위험천만한 일을 사람들은 실험하고 있다. 너무 형식적인 면에 치우쳐서는 안되겠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이 내용의 질과 양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오픈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좀더 진보된 생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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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개편전략에서 이게 핵심이다. “조직을 넘어서”
홈페이지를 우리 조직의 내용들로만 가득 채워놓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도대체 누구인가? 앞서 이야기한 광장형 홈페이지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조직의 이름에 국한해서 홈페이지 전략을 짰을 때 여전히 우리는 부족한 방문자수에 실망하고 서로 호흡하고 소통할 네티즌들이 홈페이지 안에 존재하지 않음에 절망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몰 중의 하나인 아마존은 단순히 서적만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아마존은 서적, 음반, 장남감, 오락과 같은 분야에서 여전히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아마존의 슬로건은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여기에서(On the Shelf)"다. 이 관점을 기본으로 서적에서 출발해 장난감, CD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혹자는 이를 문어발식 확장이라고도 한다. 좋게 말하면 수평적 확장형 비즈니스 모델이라고도 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인터넷서점인 YES24, 알라딘에서 꼭 책만 팔지는 않는다. 책만 팔아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DVD, 소프트웨어, 가전제품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한가지 이슈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를 지향한다면 굳이 조직을 넘어서라는 웹전략을 짤 이유는 없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지금 그 분야의 운동을 집중하고 있더라도 우리의 지향점이 그 분야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라면 우리는 “운동”이라는 큰 관점으로부터 출발하는게 옳다.

자신의 영역이 분명한 운동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운동이 환경단체만의 몫이 아니듯, 예산감시운동도 예산감시단체만의 몫이 더 이상 아니다. 운동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세분화되거나 서로 모아질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에 그러한 가치를 궁극적으로 실현할 사람들은 참여연대에도 있고, 서프라이즈에도 있고, 오마이뉴스에도 있고, 조선일보에도 있다. 지금 당장은 조직이라는 테두리 안에만 존재하겠지만 잠재적 수용자는 세상에 고루 퍼져있다.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영역을 최대한 확장하고, 그 안에서 그들의 가치와 경쟁하고,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인터넷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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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홈페이지에 올리는 정보들은 사실 정보가 아니다. 정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 주체와 외부의 객체 간의 사정이나 정황에 관한 보고”이다. 즉, 단순한 의미의 데이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가 대중들에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도구가 되고,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정보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천할 때 그게 진정한 시민단체가 제공하는 정보다.

누구를 위한 단체의 공식 입장인가?

우리는 홈페이지에 정보를 올리고 있지 않다. 데이터를 올리고 있다. 정보는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과 언어가 중요하다. 하지만 데이터에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홈페이지에 올릴 성명서나 보도자료, 논평을 꼭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써야 할까.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단체의 공식입장인데 꼭 그렇게 써야 되겠어’
‘젊은애들한테는 먹혀도 나이든 사람들한테는 아직 좀 그렇지 않아?...’
‘공동대표나 정책위원장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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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타가 아닌 정보를 주세요..

의문은 그냥 의문으로 묻어두자.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꼭 파격적으로 써야 한다는게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전달하고자 하는 1차 수신자는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이해당사자 등이다. 그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면 된다. 그런데 홈페이지에서 우리는 그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던진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명서 쓰기도 바쁜데 언제 또 홈페이지에 올릴 글을 따로 쓰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명서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성명서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바는 분명하다.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냉철하게 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내는지를 자랑하기 위해서 성명서나 보도자료, 연구보고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과 소통하고, 우리의 주장을 설득하고, 우리의 가치를 그들과 함께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언론사 팩스나 이메일로 전달하고 나서 이제 일 다했다고 손털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 내용을 좀더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1-2년 전부터 이런 일이 시민단체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지금으로 보면 2001년, 2002년이다.) 몇몇 단체들의 홈페이지에서 성명서/보도자료가 주요 콘텐츠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기사체 글쓰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오마이뉴스가 뜨고 나서 생긴 현상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고 있지 못하고 있다. 흐름을 주도하기 보다는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과정이 중요하고, 그것은 곧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다.

인터넷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시한다. 우리가 발표하는 성명서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 성명서가 왜 작성되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누구의 의사결정에 의해, 누가 작성했는지 알지 못한다. 성명서를 작성하기까지의 숨겨진 이야기, 즉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넷에 모인 대중들은 그런 것에 반응한다. 글을 재미있게 쓰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네티즌들에게 좀더 정확하고 자세히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고, 그들과 호흡하려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중과 소통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시민단체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자 신뢰를 얻는 길이다.

한 단체의 커뮤니티에서 작은 파장이 있었다. 미니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이 시민단체들에게 공개질의를 보낸 것이다. 파병반대운동에도 참여하고, 낙선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에게 물었는데 요점은 이거다. 파병에 찬성한 의원들은 왜 낙선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냐구. 그 결정을 한 의사결정단위의 회의록을 볼 수 있냐고. 한 단체만 답변하고, 세 단체는 침묵했다. 하지만 미니의 추가질의에는 첫 번째 대답을 한 단체도 답변이 없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기업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듯이 시민들은 시민단체에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뭔가에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상황은 민망하다. 흐름을 주도하고,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슬프게하는 것은 또 있다. 시민단체들이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 컨텐츠라는게 사실 성명서, 보도자료, 논평, 의견서, 이런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유인물형 홈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홈페이지에 올려진 컨텐츠가 기사체로 쓰여졌건, 딱딱한 성명서체로 쓰여졌건 상관없이 여전히 시민단체의 홈페이지에는 단체의 공식적인 입장만을 알려내는 일방통행식 소통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할이 그것 아니겠냐고 한다면 현재에 만족하고 계속 유인물만 찍어내면 된다. 그런 상황이 끔찍하다면 웹담당자 뿐만 아니라 모든 상근운동가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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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독성이 뛰어난 글은 어떤 것일까? 아래 재미있는 예가 있다.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 Dick)에 나오는 첫번째 문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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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 안 가득 우울한 공기가 가득찰 때마다, 내 영혼 깊숙이 축축한 11월의 기후가 자리할 때마다, 장의사의 집 앞에 발걸음이 절로 멈춰질 때마다, 장례식 행렬 맨 뒤에서 통곡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리고,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을 밀치고 쓰러뜨리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망을 절제하기 힘들 때마다, 나는 지금이야 말로 바다로 나가야 할 때란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글을 Kathy Henning 이라는 웹칼럼니스트가 아래와 같이 바꿔 버렸다. 원문이 가지고 있던 웅대함이라든가 철학적인 멋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이 칼럼니스트는 "인터넷은 철학과 웅대함으로 의사소통하는 곳이 아니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Kathy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칼럼니스트의 주장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얼마든지 철학적인 이야기를 웅대하게 나눌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철학과 웅대함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잡담과 보기 쉬운 글들만이 난무하는 인터넷이란 재미없는 싸구려 잡지책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다. Kathy가 의도한 것도 그것이 아닌 것처럼.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대중적 소통의 공간에서 글쓰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Kathy는 모비 딕의 첫 번째 문장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나는 바다로 나가야 한다.
내가 우울하고 고독할 때,
장의사의 집 앞에 서있을 때,
장례식을 뒤따라 갈 때,
사람들을 밀치고 쓰러뜨리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단체 소개문

"만일 여러분이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찾으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수익성 높은 고객 관계를 창출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술적 리더쉽과, 전문적 금융 서비스, 그리고 최상의 고객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파트너 관계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위 글은 미국의 한 기업 홈페이지의 소개페이지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기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위의 예는 미국의 대학교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수잔 솔로몬이 “지긋지긋한 회사소개는 이제 그만”이라는 칼럼에서 소개한 정말 지긋지긋한 회사 소개의 사례이다.

시민단체들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은 어떤가? 단체 소개문구는 또 어떤가? 아름다운 공동체, 비판과 반대를 넘어 대안을, 시민의 참여로 독립적인 운동을,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과의 연대를 통해 등등. 좋은 말들이다. 이러한 단체 소개문구는 봐줄만 하다. 단체들이 홈페이지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올려놓은 사업계획서, 보도자료 등은 우리조차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홍보브로셔를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들은 전문가에게 디자인을 의뢰하고, 수차례의 회의를 통해 단체가 하는 일을 좀더 쉽고 명확하게 소개할 단어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브로셔를 수천부씩 찍고, 수백만원의 예산을 아낌없이 지출한다. 몇 달 후, 홍보브로셔는 사무실 한켠에 쌓여만 간다.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 중에 홈페이지의 단체 소개 문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단체가 2003년 하반기에 홈페이지를 개편한 이후 두달동안 가장 많은 클릭수를 기록한 페이지는 바로 “단체 소개 페이지”이다. 두달 동안 단체 소개 페이지의 조회수는 15,000클릭에 달한다. 단순하게 비교해본다면 홍보 브로셔가 15,000장 유통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홍보 브로셔는 조직 책임자의 최종 검토까지 거치면서 신경 쓰면서 홈페이지의 단체 소개페이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